영화2010/01/03 17:20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를 갑니다. 그러면 다들 이런 얘기들을 합니다.
"누구나 다 가는 군대, 잘 다녀와", "군대에서 사람돼서 돌와오너라", "저 친구 군대 갔다오더니 사람이 확 바뀌었네"
실제로 군대 제대 후 소위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근데 그 어른이란게 뭘까요? 힘에 굴복하고 부당함에 짖눌리며 경쟁에 순응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제대군인의 올바른 변화상입니다.

이라크전에서 돌아온 아들이 실종되자 그 행방을 찾아 나선 퇴역군인 아버지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는 아들이 휴대폰으로 찍어둔 흐릿한 이라크전의 영상을 통해 전쟁의 참상 속으로 다가갑니다.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으로 일생을 살아온 아버지는 아들의 탈영, 실종, 그리고 죽음과 맞닥뜨리면서 애써 감춰왔던 진실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었던 아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판이한 그 행적들에 대해 극도의 이질감을 느낍니다.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벌벌 떨며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어야 하는 파병군인들은 그들이 살아온 삶 전체를 송두리채 빼앗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괴물로 다시 살아가야 합니다. 최소한의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괴물이 되어 버린 아들, 아들들 앞에서 행크는 그 자신이 군인이었음에도 그저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가에 대한 신념에 거대한 금이 가는 순간입니다.

행크가 지역관할 형사 에밀리 샌더스(샤를리즈 테론)의 어린 아들에게 엘라의 계곡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엘라의 계곡은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곳입니다. 꼬마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두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행크는 말합니다. 골리앗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다 그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고 힘껏 쏘아올린 새총으로 거인을 단 한번에 죽일 수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행크는 드러난 진실 앞에서 더 이상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하늘 높이 구원의 깃발을 올립니다. 세상을 향해 잘못된 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2008년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토미 리 존스의 연기는 이제 정점에 이르고 있는 듯 합니다. 나이가 들 수록 그 주름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배우는 아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토미 리 존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2009년작 <일렉트릭 미스트>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삭제되지 않은 원본 그대로를 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엘라의 계곡 HD 엘라의 계곡 HD Paran
감독 폴 해기스
출연 토미 리 존스,샤를리즈 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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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영화2009/11/15 17:55



          나는 그날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날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핸드볼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승부던지기 끝에 은메달을 땄고 그 덕에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이 후끈 달아 올랐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기억은 멈추었다. 아마도 은메달이 기억을 멈추는 촉매제가 되었으리라. 우리는 2등을 기억할 만큼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이 멈춘 바로 그 지점부터 미숙씨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스포츠 영화를 보아왔고, 그 속에서 일정한 규칙들을 익히 체득하고 있다. 이 같은 일정한 규칙을 장르라 부른다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다분히 장르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박빙의 승부-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지 않던가-도 없고, 상대팀에 대한 어떠한 정보-대부분 악당으로 묘사되곤 하는-도 없고, 무엇보다도 최후의 짜릿한 승리도 없다. 그러니 핸드볼로 은메달을 딴 얘기거리가 영화로 만들기에는 적당한 찰흙덩어리는 아닌 게 분명하다. 따라서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스포츠를 가지고 진짜 사람 사는 얘기 한번 들어 보라는 거다. 그건 임순례 감독의 전작인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무수한 노래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음악영화가 아닌 것과 똑 같은 얘기다. 
       
          대학을 들어가지 못한 백수 친구들의 이야기<세친구>, 인기도 없이 소도시의 밤무대를 전전하는 밴드의 이야기<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통해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심지어 구린내까지도 맡아야 했던 그녀의 전작들처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제목과는 달리 가슴 벅찬 희망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미숙의 삶도, 혜경의 삶도, 정란의 삶도 올림픽 이후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애 최고의 순간이 지나도 우리의 삶이 변하지 않는 것. 그렇다면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무의미한 것일까? 그 순간을 위한 노력은 부질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이 영화를 온전히 보게 되는 것일게다.

          나는 이 영화가 '최고'가 아니라 '순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최고'는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승부던지기는 실패했고 그녀들은 아마도 쓸쓸히 귀국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순간'들을 우리는 목격한다. 혜경이 감독자리에서 쫓겨 나지만 선수의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미숙이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 경기장으로 돌아 온 순간, 장보람이 부상을 입고도 경기에 뛰겠다고 얘기하는 순간. 우리가 목격한 바로 그 순간 그녀들은 최고인 것이다. 그 순간은 그녀들이 선택한 순간이다. 그녀들이 최고라고 생각한 일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생각해보라. 내 생애 최고라고 생각한 일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선택한 순간이 많은지 아니면 그냥 뒤돌아선 순간이 많은지. 가슴 벅찬 사랑 앞에, 부모님의 고마움 앞에, 가족의 애정 앞에, 우리 옆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도움의 손길 앞에, 그리고 당신의 꿈 앞에 당당히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용기있게 선택했던가?

          순간은 흘러가면 끝이다. 순간이 지나고 나면 삶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계속될 것이다. 혜경은 일본에서 다시 감독 겸 선수생활을 할 것이고, 정란은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해주는 남편과 식당에서 물수건으로 슛을 던지며 살아갈 것이고, 미숙은 마트에서 야채를 팔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지난하다. 그러나 그때 그녀들이 선택한 순간이 나머지 삶을 지탱해 줄 것이다. 그 순간 그녀들은 최고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나를 생각한다. 지금 이순간이 내 생애 최고를 만들 수 있는 순간임을 알기에 최고가 될 수 있는 지금, 나는 두려워 하지 않고, 주저않지 않고, 뒤돌아 도망가지 않고, 당당히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나를 생각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Paran
감독 임순례
출연 문소리,김지영,조은지,김정은,엄태웅
가격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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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