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1/21 엄마가 될지도..
창작熱2010/01/21 23:11



제1장

마가 목욕탕에 가자고 했을 때 가기 싫다고 말한 건 정말 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여자애가 깨끗이 씻고 다녀야 될 거 아니냐며 내 손을 끌다시피 했을 때는 아예 그 손을 뿌리치고는 내방으로 쏙 들어와 버렸다.
     "집에 욕실 있는데 뭐하러 돈주고 목욕탕을 가요"
     "딸이라고 하나 있는게 같이 가서 엄마 등도 좀 밀어주고 하면 얼매나 좋냐"
그런 건 때밀이 아줌마 시키면 되잖아라고 할려다 그만 두었다. 엄마는 진짜 안갈거야? 나 지금 간다. 꽁꽁 다짐을 해두더니 잠시후 삐리링 아파트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입을 삐죽거리며 방에 앉았다가 슬그머니 거실로 나왔다. 바구니 가득히 요플레와 우유, 날계란을 사들고 가는 것까지야 이뻐지고 싶은 여자의 욕구라 봐줄 수 있다고 하겠지만 남들이 보건 말건 살집을 덜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줌마들을 보는 건 같은 여자인 나도 참아내기가 힘들 정도로 이건 아니다 싶다. 거기에다 벗은 몸을 한 채 김이 서린 욕실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공포영화 분위기란 말이거든.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뭐 대수냐? 이 목욕탕이라는 공공장소가 나를 소름돋게 하는 진짜 이유는 사방에서 나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거울들이다. 밋밋한 가슴이야 집에서도 수시로 보는 거지만 빈약한 엉덩이는 거울과 거울이 서로를 비추며 거울 속에, 거울 속에, 또 거울 속에서 참으로 불쌍하게 서로를 놀려 먹고 있단 말이야.

처음부터 내가 목욕탕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오히려 냉탕에서 물바가지 두 개를 포갠 후 그걸 튜브삼아 수영을 즐기던 시절도 있었다. 찬물을 튀긴다며 야단을 치는 아줌마들의 고함소리에도 굿굿하게 잘도 놀았었다. 그렇지만 그런 시절은 중학교 1학년이 마지막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된 학기초의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스멀스멀 화가 난다.
     "어머! 하루어머니 안녕하세요? 하루랑 목욕 왔나봐"
     "아~네 안녕하세요. 와, 민영이 많이 컷네"
아닌게 아니라 민영의 벗은 몸을 본 순간 난 좀 뜨아했다. 민영이의 키가 크다는 건 우리 학교 애들이라면 다 아는 일이지만 중학교 2학년짜리의 몸에 저런 가슴이 붙어 있다니. 게다가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굴곡이라니. 난 손에 들려 있던 포개진 물바가지 두개를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고는 탕 속으로 숨어버렸다. 민영이는 아직도 그러고 노니 하는 표정으로 나를 쓰윽 보더니 마치 미스코리아 행진같은 걸음걸이로 샤워기 앞에 앉는 것이었다. 민영이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난 탈의실로 나왔고 그 때 나는 거울 속에, 거울속에, 또 거울 속에서 서로를 놀려 먹고 있는 나의 빈약한 엉덩이를 보고 만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난 목욕탕을 끊었다.

민영이는 나랑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2년을 내리 같은 반을 한 터라 엄마도 잘 아는 사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친하는 얘기는 아니다. 엄마끼리 더 친한 사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어쨌든 민영이는 6학년이 되면서 부쩍 키가 크더니 급기야 우리 반에서 제일 키 큰 애가 되었다. 남녀학생을 통틀어서 말이다. 좀 빠른 애들은 그때 이미 초경을 시작했고 당연히 민영이도 그 중의 한명이었다. 난 뭐 그런 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가끔 뒷자리에서 큰 여자애들이 그것에 대해 소근거리는 얘기를 듣곤 했다. 처음 생리를 했을 때 자기 아빠가 꽃다발을 사주면서 외식을 시켜줬다거나, 어제는 엄마 생리대를 꺼내 썼는데 왠지 자기가 엄마와 동급이 된 것 같더라는 얘기들... 나도 언젠가 엄마의 화장대 서랍 맨 밑에 있는 생리대를 꺼내서 만져본 적이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두툼했지만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이게 어른이 되는, 여자가 되는 하나의 표시일까? 엄마와 나를 여자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될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제2장에서 계속)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창작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가 될지도..  (0) 2010/01/21
빈벤치  (0) 2009/07/25
자동차보험  (0) 2009/06/03
모텔 알프스  (0) 2009/06/02


Posted by 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