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11 12:48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조차도 진보는 제갈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 저리 방황을 하였습니다. 거대한 저항에 부대끼며 점점 힘을 잃어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진보가 나아갈 바가 어디인가? 그 미래상은 무엇인가?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지도 못해 놓고 뭔소리냐? 이럴 수 있거든요. 사실 내가 아쉽게 놓친 것도 있고 다른 분야 때문에 후순위로 밀려 버린 것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난 대통령이 혼자서 하는게 아니란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변명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죠. 예를 들어 그 시대 국민들이 감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시대 국민들이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라는 것이 어쩌면 결정적일지도 몰라요. <본문 141쪽>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315쪽에 달하는 이 책은 어쩌면 서문에 불과합니다.  참된 진보의 미래를 향해서 노무현이 던진 화두로서의 서문... 이제 우리가 그 화두에 답하여 본문을 작성할 차례입니다.
내가 말하는 시민이라는 것은 자기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 자기와 정치, 자기와 권력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적어도 자기 몫을 주장할 줄 알고 자기 몫을 넘어서 내 이웃과 정치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것을 일반화해서 정치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시민이라고 보는 것이죠. 이런 개념에서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시민이고 그 시민 없이는 민주주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시민의 숫자가 적다면 시민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죠. <본문 295쪽>

 

작가 소개
노무현(盧武鉉)
  
1946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다.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전지법 판사를 지내다 1978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제13,15대 국회의원과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2002년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009년 5월 23일 63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지은 책으로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여보, 나 좀 도와줘』, 『노무현이 만난 링컨』, 『성공과 좌절』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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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10/06/05 22:58



힘겹게 이사를 합니다. 이삿짐센터를 불렀지만 주인 아저씨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같이 짐을 옮깁니다. 그러나 힘에 부칩니다. 부천시 원미동으로 그렇게 이사를 갑니다.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팍팍해지는 일상들이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싸움판에서 밀려났지만 그래도 서울에 빌붙어 살 수 밖에 없는 서울의 위성도시들 속의 서민의 삶에는 짙은 패배감이 숨겨져 있는 듯 합니다. 또한 더는 밀릴 수 없다는 안간힘이 느껴집니다.
 
재개발 바람에도 농사지을 땅을 놓지 않으려 고집을 피우는 강노인은 결국 땅을 팔아야 하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치졸하게 싸워야 하는 형제슈퍼의 김반장은 결국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만 하고, 화장실도 없는 지하 단칸방에서 용변 해결이 지상과제 되어 버린 지하생활자는 자장면 한그릇에 배를 채워야만 합니다. 아~ 그리고 어찌 저찌하여 원미동까지 흘러 들어와 물장사를 해야 하는 한강인삼찻집의 그 여자는 또다시 원미동에서 밀려나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요?

그럼에도 왠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다짐하는 듯 합니다. '한계령'을 넘어 '좋은나라'로 가고자 합니다. 언제가 될지 모를 요원한 희망의 끝이지만 꼭 '좋은나라'가 있을거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은 따뜻합니다.


작가 소개
양귀자
  
1955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여중, 전주여고, 원광대 국문과를 문예장학생으로 입학, 1978년 졸업했다. 1978년 「문학사상」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나온 이후 『귀머거리 새』(1985), 『원미동사람들』(1987),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1989), 『희망』(1990),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 『슬픔도 힘이 된다』(1993),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1993), 『천년의 사랑』(1995), 『모순』(1998) 등 소설책과 에세이집 『따뜻한 내 집 창 밖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1988), 『삶의 묘약』(1996), 장편동화 『누리야 누리야 뭐하니』(1994), 소설선집 『천마총 가는 길』(1995), 육아 에세이집 『엄마노릇 마흔일곱 가지』(1995) 등의 책을 펴냈으며, 1988년 『원미동 사람들』로 '유주현문학상'을, 1992년 「숨은 꽃」으로 '이상문학상'을, 1996년 「곰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1999년 「늪」으로 '21세기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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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10/05/16 12:49




다 가지지 못해
애를 쓰다
한 세상이 다가고

그나마 얄팍한 가짐마저도
편히 놓지 못해
이렇게 애가 닳고 있구나..

농부 철학자 윤구병의 최근작 세편중 그 첫번째 에세이입니다. 단순한 귀농 농부의 성공기나 체험담이 아니라 참삶에 대한 깊은 생각이 담겨져 있는 맑은 책이었습니다. 도시생활의 대안으로서의 귀농과 농사가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 삶의 본질이 자연 속에, 흙 속에 있음을 자각하길 간절히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서로를 속이고, 감정을 배신하고, 남을 이겨야만 살 수 있는 삶에 지쳐, 도피하듯 귀농을 생각했던 저에게 도망자로서의 농촌생활은 한낱 도시생활의 상처를 혀로 핥는 다친 짐승의 위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대안적 삶이 아니라 진정성으로서 흙을 밟을 마음이 있을 때....
그때 떠나야겠지요.


작가 소개
윤구병
  
194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공부는 제법 했으나 말썽도 많이 부리는 학생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무전여행을 떠났다가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위로 형이 여덟 명 있었는데, 가장 큰형의 이름은 일병이고, 아홉번째 막내로 태어나 '구병'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뒤 월간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맡았고, 1981년에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되었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1988년에 보리출판사, 1989년에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 몸담았다.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직을 15년 만에 그만두고, 1995년 전북 부안군 변산으로 농사지으러 들어갔다. 공동체야말로 우리 삶을 온전하게 지켜줄 울타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이가 세운 변산 공동체는 지금도 여전히 20여 가구 50여 명이 느슨한 지역 공동체 틀을 지키면서 논 2만 3,000제곱미터(7,000평)와 밭 2만 6,000제곱미터(8,000,평) 안팎을 일구고 있다. 이 가운데 매 끼니 같이 밥 먹고, 경제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식구'는 스무 사람 남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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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10/01/29 17:22



헌법을 처음 읽은 때가 대학교 1학년 때입니다. 김철수 저 <헌법학 개론>의 뒷장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던 대한민국헌법 전문과 130개의 조문을 다 읽고는 저는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헌법이 지향하는 세계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받은 탓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 나를 둘러싼 현실이 그려내는 헌법의 풍경은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헌법은 후불제이기 때문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합니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선언한 대로 대한민국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정통성 있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제헌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다 지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었고, 그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 였다. <본분 22쪽>

이 책의 구성은 대한민국 헌법의 구성과 흡사하게 권리에 관한 부분인 제1부 헌법의 당위와, 권력에 관한 부분인 제2부 권력의 실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1부 헌법의 당위에서는 헌법의 존재의의와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고 현실 정치에서, 특히 MB정부 내에서 침해당하고 있는 권리에 대해서 논하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을 바라보는 진보와 보수의 시선에 대한 명쾌한 해석도 피력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조는 '존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당위'를 선언한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진화하는 중이며, 그 진화는 때로 매우 폭력적인 증상을 동반했다.   <본문 59쪽>
진보는 '당위'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를 추종한다. 진보는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싸운다. <본문 68쪽>
보수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불가피한 자연적 질서로 간주하고 그것을 지키려 한다. <본문 69쪽>

그러나 글이 2부로 진행되면서 헌법과 현실정치의 비교를 통한 비판의 모습이 다소 희석되고 자신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모습이 보여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권력의 핵심, 최소한 권력의 최고 주변부에 접근했던 사람의 얘기를 통해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비전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2010년 이후의 정치흐름에 대한 단초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고 저자의 진정성을 읽어 낼 수만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꿈과 비전은 대한민국 헌법에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헌법이 담고 있는 '꿈과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찾아 국민과 대화하고 소통함으로써 그것을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본문 93쪽>


작가 소개
유시민(柳時敏)
                                                                            
1959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대학교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개혁국민정당 대표, 16대 17대 국회의원 및 44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나머지 20대를 거리와 감옥에서 보냈다. 독재 정권이 무너진 다음에는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은 마음에 유럽으로 가서 공부했다. 나이 마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책과 칼럼을 쓰고 방송 일을 하다가 2002년부터 정치에 직접 참여했다. 좋은 대통령 만들기, 좋은 정당 만들기, 좋은 나라 만들기를 하겠노라며 뛰어 다녔는데, 성공한 일도 있고 실패한 일도 많았던 6년간의 정치 활동은 결국 2008년 국회의원 낙선으로 끝이 났다. 지금은 원래 직업이었던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와 글쓰기와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정당과 정치를 직업정치인들의 전유물로 남겨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국민이 정당과 정치를 자기 것으로 만들게 하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글을 쓰고 강의하는 일도 더 좋은 정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2010년 국민참여당에 입당하여 제 2기 현실정치 시기를 맞이 하고 있다.
저서로는 <거꾸로 읽은 세계사><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WHY NOT -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읽기><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대한민국 개조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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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10/01/19 17:13



이책에도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서늘함, 쿨하다고 해야 하는 그 문체는 여전히 배어 있는것 같습니다. 사실 「상실의 시대」와 같은 로맨스에서도 그 서늘함이 일종의 장점처럼 작용했으니까 스릴러 미스터리물에 가까운 이번 작품에서는 더 그런 문체의 장점을 살리고 싶었을 지도 모르죠.

우리도 가끔은 그런 날을 경험합니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 보니 내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던 느낌. 아니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합니다. 예를 들면, 어제까지만 해도 죽고 못살것 같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뒤 세상은 이제 다른 곳이 되는거지요. 그 반대도 있겠네요. 이상형의 연인을 만났다면 그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 되겠죠. 1Q84년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하늘에 달이 두개 떠 있지 않더라도 그 세상은 정녕 어제와는 다른 세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평생 살아가야 할테죠. 그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을겁니다.

아오마메도 덴고도 어쩌면 그렇게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서로를 끌어 당겨서 1Q84년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상실의 시대」를 너무 좋게 봤고 그 뒤에 나왔던 하루키의 소설은 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를 부르짖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하나도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이젠 다른 책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마저 뭔가 있는 듯 멋있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해변의 카프카」, 「어둠의 저편」 같은 책들 말입니다.



작가 소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1968년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연극과에 입학하여 전공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고, 1982년 첫 장편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으로 노마문예신인상을, 1985년에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하였다.
1987년에는 <상실의 시대>를 발표, 일본에서만 약 430만 부가 팔리며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다. 1994년 <태엽 감는 새>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해변의 카프카>가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그외에도 <어둠의 저편><렉싱턴의 유령><도쿄 기담집><먼 북소리><슬픈 외국어> 등 많은 소설과 에세이가 전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외국문학에 배타적인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세계 40여 개 나라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 2006년에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해럴드 핀터 등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이 받은 체코의 '프란츠 카프카상'을, 2009년에는 이스라엘 최고의 문학상인 '예루살렘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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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09/12/22 23:47



역사가 그냥 흘러가서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잊혀져서는 안되겠기에 피터지게 싸우는 글꾼... 조정래!!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이념과 사상을 도움삼아, 이념과 사상에 배반당하며, 조선독립군과 대한광복군과 조선공산당과 조선빨치산은 강철보다 강한 사람의 이름으로 광야를 달리며, 피를 뿌리며, 나의 조국 조선을 되찾았다.
그의 12권의 대하소설 <아리랑>속에서 보석같은 대목을 옮겨 적는다.
 

          일본군들은 마침내 1922년 10월에 러시아 땅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윤철훈과 이광민은 마차를 타고 해삼위(블라디보스톡)를 달렸다.
          "이 길을 걸어서 다니다니..."
          창밖을 내다본 채 윤철훈은 감회에 젖은 소리로 말하고는
          "이동지는 몇번이나 오갔는지 기억하시오?"
          그는 고개를 돌려 이광민을 바라보았다.
          "글쎄요, 그거 잘 모르겠는데요"
          이광민은 모처럼 <모르겠다>는 말을 홀가분하게 해버렸다.
          "그럴거요. 여기저기 너무 많이 다녔으니"
          윤철훈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난 가끔 사람의 몸이 강철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느끼오.
          제 아무리 강한 강철바퀴라 해도 그동안 우리가 걸어다닌 길을
          굴렀다면 다 닿아서 부서지고 말았을거요.
          그런데 우리는 끄덕없지 않소?"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이광민을 쳐다보았다.

                                                     - 사람의 몸은 강철보다 더 강하다 -

 

조정래(趙廷來)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출생하였다. 광주 서중학교와 서울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후 왜곡된 민족사에서 개인이 처한 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등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조정래 전반기 문학은 『조정래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조정래의 전반기 문학 작품들을 한데 모은 이 전집은 소설 형식으로 씌어진 그의 문학적 일대까지 갖추어 상상력에 의한 글쓰기가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살펴볼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한강』은 1980년대 이후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화상> <동국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시문화예술상> <자랑스런 보성(普成)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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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09/12/22 23:35



      차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내가 가는게 아니라 풍경이 가고 있다.
    
     빙글빙글 지구가 돌고 있음에도
     태양이 돌고 달이 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착각한다.
     세상의 중심이 '나'구나.
     <내이름은 빨강>은 그런 나를 깨운다.
     착각하지 말라고 한다.
    
     이 세상에는 또다른 세상이 있다.
     또다른 신과 또다른 예술이 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
     독자를 끌어들이는 형식미!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전편에 걸쳐 올곧게 관통하는
     수려한 문장력!
     신과 역사와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

     동양과 서양의 충돌속에서 겪어야 했던
     이스탄불 사람들의 정체성의 불안을
     세밀화가들의 성쇠를 통해서
     완벽하게, 마치 세밀화를 보듯이,
     그려내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열번을 줘도 아깝지 않다.




작가 소개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로 독서에 몰두하며 청소년기를 보낸다. 이스탄불의 명문 고등학교인 로버트 칼리지를 졸업하고 이스탄불 공과 대학 건축학과에 진학하지만 자신에게 이야기꾼의 재능'이 더 많이 있음을 깨닫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소설 쓰기에 전념하여 첫 작품인 <제브데트씨와 아들들>로 '밀리예트 신문' 소설 공모에 당선된다. 1982년에 출간된 이 작품으로 그는 터키의 대표적 문학상인 '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수상하며 터키 문단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떠오른다.
두번째 소설 <고요한 집>(1983)으로 '마다라르 소설상'과 프랑스에서 주는 '1991년 유럽 발견상'을 받았고, <하얀 성>(1985)이 13개 나라에 번역 소개되면서 파묵은 세계적인 작가의 대열에 들기 시작한다. 또한 터키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는 기록을 세운 <새로운 인생>(1994)은 19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내 이름은 빨강>은 현재까지 32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고 2006년 파묵은 "자신이 태어난 도시의 우울한 영혼을 찾는 여정에서 문화들 간의 충돌과 융합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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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09/12/08 09:20


 
아름답다, 슬프다
- 그녀에게 보내는 그의 답장 -

오늘 아침, 출근길에 어린 까치 한 마리를 보았어. 까악 까악 울어대는 입속이 빠알간 어린 까치가 제법 영글은 날개를 파닥이며 플라타너스 가로수, 그 푸른 가지들 사이를 총총이 날아 다녔어. 그 때 내 이마에 배인 땀을 닦으며, 아! 여름이 왔구나. 이 여름에 난 아직 이 곳에 있구나. 생각했어.

그 날, 시골집으로 너를 만나러 간 그 날. 이미 삐걱거리는 마음의 틈새가 불안해서, 혹시나 그 틈이 틈이 아닌 쪼개짐이 되면 어쩌나 안달이 나버린 나를 너도 보았니? 너가 나를 놀란 토끼마냥 바라보다 황급히 뒷문으로 밀어내다시피 끌었을 때, 아니구나, 나는 아니었구나. 온전히 너에게 내가 서있을 수는 없구나, 생각했어.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그녀가 세상을 처음으로 배웠을 고향집에서,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황급히 밀쳐내졌을 때,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입에 담기 싫어 했던, 그러나 가슴 한 켠에 늘 또아리를 틀고 있던 불륜의 역겨운 냄새를 맡고 말았는지도... 그러나 뭐 어때. 그게 죄라면, 그래서 너와 함께 받아야 할 벌이라면 난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돌아오는 기차의 흔들림 속에서 너가 이렇게 흔들리다, 흔들리다 나에게 다시 올거라는 희망을 품었어.

어린 시절, 안방에서 들리던 부모님의 다툼이 무엇 때문인지 구체적인 언어로 들리기 시작했을 무렵에 난 아버지가 정말 싫었어. 또 두려웠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가벼운 바람에도 쉬 쓰러질 싸리울인거 같았어. 그 때 어머니는 밥을 짓다가도 넋을 놓아 밥을 태우기도 하고, 바느질을 하다가도 앞산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다 바늘로 손을 찌르곤 했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그냥 입으로 쪽쪽 빨고는 했어. 그런 날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었어. 그러면 나는 괜히 씩씩한 척하고 방을 쿵쿵거리며 다니고 숙제를 열심히 했어.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길어지고, 내가 누룽지를 먹는 날이 많아지던 어느 날 밤에 설잠을 자고 있던 나는 아버지의 웅얼웅얼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어. 아버지가 돌아왔구나. 나는 돌아 누운 채 그 웅얼거림에 귀를 세웠어

다 잊었어. 다 끝냈다고. 내 마음의 바람을 잠재웠다고. 그러니 당신도 다 잊어.

당신만 잊으면 , 당신만 끝나면, 내 마음의 생채기는 어쩌라고. 바늘로 손을 찔러 피가 뚝뚝 떨어져도 아프지 않을 만큼 깊은 내 마음의 생채기는 어쩌라고.

내가 다 보상하리다. 다 갚으리다.

그 날 난 참으로 편안한 잠을 잔 것같아. 이후로 아버지는 정말 다 보상하려는 듯, 다 갚으려는 듯 참으로 열심이었어. 그러나 깊은 밤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다 마주 친, 마루 끝에 앉아 담배를 피는 아버지. 학교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된 축처진 어깨로 걷는 아버지. 일요일 오후 내내 등을 돌리고 벽을 바라보며 누어만 계시는 아버지. 너무 늦게 찾아온 바로 그, 순서도 없는 그 감정의 바람앞에서 힘겹게 싸웠는 지도 모를 아버지의 슬픔을 종종 보곤 했어. 아비지의 그 여자가 떠나갔다고, 아니면 떠나 보내졌다고 해서 어머니는, 그리고 나는 행복했었나?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어. 아버지, 당신은 행복하셨나요? 아니 행복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럭저럭 견딜만 하셨나요? 어떻게 견디신건가요? 미친 듯이 궁금한 이 말을 하려고 했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이번 주말에 내려갈께요. 어머니 산소에도 가구요. 네. 은선이도 많이 컸어요. 그러고는 끊었어.

이젠 완연한 여름이야. 우리의 계획대로라면 이 여름은 이 곳이 아닌 외국의 어느 거리에서 우리가 함께 하고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서로를 잊기 위해 애를 쓰는데 이 여름을 보내야 하다니. 그래도 오늘 아침처럼 입속이 빠알간 까치가 까악 까악 울고, 눈이 부실만큼 하얀 햇살이 비추는 날엔 너를 잊지 않으려 애를 쓰고 싶어.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는 그 아름다움 만으로도 슬프니까 말이야. 내 사랑...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말이 될지라도, 내 사랑...안녕.


작가 소개
신경숙(申京淑)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 우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존재의 내면을 파고드는 섬세한 문체와 삶의 시련과 고통에서 길어낸 정교하고 감동적인 서사로 평단의 주목과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소설집으로 <강물이 될 때까지><풍금이 있던 자리><감자먹는 사람들><딸기밭><종소리>등과 장편소설로는 <깊은 슬픔><외딴방><기차는 7시에 떠나네><바이올렛><리진> 등이 있다. 짧은 소설집 <J이야기>,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자거라, 내 슬픔아>와 한일 양국을 오간 왕복 서간집<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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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