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29 17:22



헌법을 처음 읽은 때가 대학교 1학년 때입니다. 김철수 저 <헌법학 개론>의 뒷장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던 대한민국헌법 전문과 130개의 조문을 다 읽고는 저는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헌법이 지향하는 세계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받은 탓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 나를 둘러싼 현실이 그려내는 헌법의 풍경은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헌법은 후불제이기 때문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합니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선언한 대로 대한민국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정통성 있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제헌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다 지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었고, 그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 였다. <본분 22쪽>

이 책의 구성은 대한민국 헌법의 구성과 흡사하게 권리에 관한 부분인 제1부 헌법의 당위와, 권력에 관한 부분인 제2부 권력의 실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1부 헌법의 당위에서는 헌법의 존재의의와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고 현실 정치에서, 특히 MB정부 내에서 침해당하고 있는 권리에 대해서 논하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을 바라보는 진보와 보수의 시선에 대한 명쾌한 해석도 피력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조는 '존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당위'를 선언한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진화하는 중이며, 그 진화는 때로 매우 폭력적인 증상을 동반했다.   <본문 59쪽>
진보는 '당위'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를 추종한다. 진보는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싸운다. <본문 68쪽>
보수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불가피한 자연적 질서로 간주하고 그것을 지키려 한다. <본문 69쪽>

그러나 글이 2부로 진행되면서 헌법과 현실정치의 비교를 통한 비판의 모습이 다소 희석되고 자신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모습이 보여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권력의 핵심, 최소한 권력의 최고 주변부에 접근했던 사람의 얘기를 통해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비전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2010년 이후의 정치흐름에 대한 단초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고 저자의 진정성을 읽어 낼 수만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꿈과 비전은 대한민국 헌법에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헌법이 담고 있는 '꿈과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찾아 국민과 대화하고 소통함으로써 그것을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본문 93쪽>


작가 소개
유시민(柳時敏)
                                                                            
1959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대학교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개혁국민정당 대표, 16대 17대 국회의원 및 44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나머지 20대를 거리와 감옥에서 보냈다. 독재 정권이 무너진 다음에는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은 마음에 유럽으로 가서 공부했다. 나이 마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책과 칼럼을 쓰고 방송 일을 하다가 2002년부터 정치에 직접 참여했다. 좋은 대통령 만들기, 좋은 정당 만들기, 좋은 나라 만들기를 하겠노라며 뛰어 다녔는데, 성공한 일도 있고 실패한 일도 많았던 6년간의 정치 활동은 결국 2008년 국회의원 낙선으로 끝이 났다. 지금은 원래 직업이었던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와 글쓰기와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정당과 정치를 직업정치인들의 전유물로 남겨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국민이 정당과 정치를 자기 것으로 만들게 하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글을 쓰고 강의하는 일도 더 좋은 정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2010년 국민참여당에 입당하여 제 2기 현실정치 시기를 맞이 하고 있다.
저서로는 <거꾸로 읽은 세계사><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WHY NOT -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읽기><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대한민국 개조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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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창작熱2010/01/21 23:11



제1장

마가 목욕탕에 가자고 했을 때 가기 싫다고 말한 건 정말 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여자애가 깨끗이 씻고 다녀야 될 거 아니냐며 내 손을 끌다시피 했을 때는 아예 그 손을 뿌리치고는 내방으로 쏙 들어와 버렸다.
     "집에 욕실 있는데 뭐하러 돈주고 목욕탕을 가요"
     "딸이라고 하나 있는게 같이 가서 엄마 등도 좀 밀어주고 하면 얼매나 좋냐"
그런 건 때밀이 아줌마 시키면 되잖아라고 할려다 그만 두었다. 엄마는 진짜 안갈거야? 나 지금 간다. 꽁꽁 다짐을 해두더니 잠시후 삐리링 아파트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입을 삐죽거리며 방에 앉았다가 슬그머니 거실로 나왔다. 바구니 가득히 요플레와 우유, 날계란을 사들고 가는 것까지야 이뻐지고 싶은 여자의 욕구라 봐줄 수 있다고 하겠지만 남들이 보건 말건 살집을 덜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줌마들을 보는 건 같은 여자인 나도 참아내기가 힘들 정도로 이건 아니다 싶다. 거기에다 벗은 몸을 한 채 김이 서린 욕실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공포영화 분위기란 말이거든.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뭐 대수냐? 이 목욕탕이라는 공공장소가 나를 소름돋게 하는 진짜 이유는 사방에서 나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거울들이다. 밋밋한 가슴이야 집에서도 수시로 보는 거지만 빈약한 엉덩이는 거울과 거울이 서로를 비추며 거울 속에, 거울 속에, 또 거울 속에서 참으로 불쌍하게 서로를 놀려 먹고 있단 말이야.

처음부터 내가 목욕탕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오히려 냉탕에서 물바가지 두 개를 포갠 후 그걸 튜브삼아 수영을 즐기던 시절도 있었다. 찬물을 튀긴다며 야단을 치는 아줌마들의 고함소리에도 굿굿하게 잘도 놀았었다. 그렇지만 그런 시절은 중학교 1학년이 마지막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된 학기초의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스멀스멀 화가 난다.
     "어머! 하루어머니 안녕하세요? 하루랑 목욕 왔나봐"
     "아~네 안녕하세요. 와, 민영이 많이 컷네"
아닌게 아니라 민영의 벗은 몸을 본 순간 난 좀 뜨아했다. 민영이의 키가 크다는 건 우리 학교 애들이라면 다 아는 일이지만 중학교 2학년짜리의 몸에 저런 가슴이 붙어 있다니. 게다가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굴곡이라니. 난 손에 들려 있던 포개진 물바가지 두개를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고는 탕 속으로 숨어버렸다. 민영이는 아직도 그러고 노니 하는 표정으로 나를 쓰윽 보더니 마치 미스코리아 행진같은 걸음걸이로 샤워기 앞에 앉는 것이었다. 민영이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난 탈의실로 나왔고 그 때 나는 거울 속에, 거울속에, 또 거울 속에서 서로를 놀려 먹고 있는 나의 빈약한 엉덩이를 보고 만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난 목욕탕을 끊었다.

민영이는 나랑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2년을 내리 같은 반을 한 터라 엄마도 잘 아는 사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친하는 얘기는 아니다. 엄마끼리 더 친한 사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어쨌든 민영이는 6학년이 되면서 부쩍 키가 크더니 급기야 우리 반에서 제일 키 큰 애가 되었다. 남녀학생을 통틀어서 말이다. 좀 빠른 애들은 그때 이미 초경을 시작했고 당연히 민영이도 그 중의 한명이었다. 난 뭐 그런 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가끔 뒷자리에서 큰 여자애들이 그것에 대해 소근거리는 얘기를 듣곤 했다. 처음 생리를 했을 때 자기 아빠가 꽃다발을 사주면서 외식을 시켜줬다거나, 어제는 엄마 생리대를 꺼내 썼는데 왠지 자기가 엄마와 동급이 된 것 같더라는 얘기들... 나도 언젠가 엄마의 화장대 서랍 맨 밑에 있는 생리대를 꺼내서 만져본 적이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두툼했지만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이게 어른이 되는, 여자가 되는 하나의 표시일까? 엄마와 나를 여자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될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제2장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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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10/01/19 17:13



이책에도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서늘함, 쿨하다고 해야 하는 그 문체는 여전히 배어 있는것 같습니다. 사실 「상실의 시대」와 같은 로맨스에서도 그 서늘함이 일종의 장점처럼 작용했으니까 스릴러 미스터리물에 가까운 이번 작품에서는 더 그런 문체의 장점을 살리고 싶었을 지도 모르죠.

우리도 가끔은 그런 날을 경험합니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 보니 내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던 느낌. 아니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합니다. 예를 들면, 어제까지만 해도 죽고 못살것 같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뒤 세상은 이제 다른 곳이 되는거지요. 그 반대도 있겠네요. 이상형의 연인을 만났다면 그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 되겠죠. 1Q84년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하늘에 달이 두개 떠 있지 않더라도 그 세상은 정녕 어제와는 다른 세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평생 살아가야 할테죠. 그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을겁니다.

아오마메도 덴고도 어쩌면 그렇게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서로를 끌어 당겨서 1Q84년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상실의 시대」를 너무 좋게 봤고 그 뒤에 나왔던 하루키의 소설은 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를 부르짖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하나도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이젠 다른 책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마저 뭔가 있는 듯 멋있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해변의 카프카」, 「어둠의 저편」 같은 책들 말입니다.



작가 소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1968년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연극과에 입학하여 전공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고, 1982년 첫 장편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으로 노마문예신인상을, 1985년에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하였다.
1987년에는 <상실의 시대>를 발표, 일본에서만 약 430만 부가 팔리며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다. 1994년 <태엽 감는 새>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해변의 카프카>가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그외에도 <어둠의 저편><렉싱턴의 유령><도쿄 기담집><먼 북소리><슬픈 외국어> 등 많은 소설과 에세이가 전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외국문학에 배타적인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세계 40여 개 나라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 2006년에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해럴드 핀터 등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이 받은 체코의 '프란츠 카프카상'을, 2009년에는 이스라엘 최고의 문학상인 '예루살렘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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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분류없음2010/01/13 21:50


i n v i t a t i o n

티스토리 초대장

+ 남은 초대장 수 : 01

안녕하세요!

티스토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시려는 여러분께 초대장을 배포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만의, 내 생각을, 내 기억을 담는 소중한 블로그를 만들고 싶다면 티스토리로 시작해보세요!

티스토리 블로그는 초대에 의해서만 가입이 가능합니다. 원하시는 분은 댓글에 E-mail 주소를 남겨주시면 초대장을 보내드립니다. 남겨주실 때에는 꼭 비밀댓글로 남겨주세요!

초대장을 보내드리고 바로 개설하시지 않으신 분들은 초대장을 회수할 수도 있으니 바로 개설해주세요!

Yes
이런 분들께 드립니다!
1. 다른 블로그를 사용해보셨던 분
2. 이메일 주소가 정상적인 분
3. 블로그를 시작하려는 이유를 남겨주신 분!
No
이런 분들께 드리지 않아요!
1. 이메일 주소가 의심되는 분!
2. 이메일 주소를 남기지 않으신 분
3. 이유도 없이 달라고 하시는 분!
티스토리 이래서 좋아요!
1. 이미지, 동영상, 오디오, 파일까지! 무한 용량과 강력한 멀티미디어를 올릴 수 있어요!
2. 스킨위자드로 스킨을 내맘대로~ 거기에 기능 확장 플러그인까지!
3. 내가 원하는대로 myID.com으로 블로그 주소를 만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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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영화2010/01/12 23:15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일면 독자의 상상을 하나의 틀 속에 가두는 작업일 것입니다. 소설에 묘사되는 이미지는 그 소설을 읽는 독자의 수만큼 많고 다양합니다. 그 수많은 이미지가 영화를 통해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화된다는 것은 어쩌면 안타까운 일이 될테지요. 그렇기 때문에 소설 매니아들은 자기가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이 영화화되는 것을 반대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영화작가들은 소설의 영화화를 꿈꾸고 시도했으며 찬사와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그것은 어떤 욕망과도 같은 작업인 것 같습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아이 
문명이 파괴된 세상, 남겨진 아버지와 아들,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인간사냥꾼. 회색의 황량한 지구에는 이제 아무런 희망이 없는 듯 보입니다. 이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인지 영화는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인간을 잡아먹지 않고는 굶어 죽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인간성은 이미 생명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사치품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야"
아버지는 끊임없이 아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아들을 통해서 희망을 봅니다. 신을 느낍니다. 또다시 이런 세상이 온다고 해도 이 세상을 택하겠다고 합니다. 바로 저 아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성애의 양면성
<폭력의 역사>에서 평범한 가장과 잔혹한 킬러의 양면성을 보여 줬던 비고 모텐슨의 연기는 황폐화된 지구에서 아이를 지켜내야 하는 부성애의 극렬한 대비를 완벽하게 드러냅니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살려내기 위해 살인을 서슴치 않으며, 굶주린 사람의 옷을 벗기고 빼앗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희망을 얘기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추억합니다. 이러한 양면성이야말로 문명이 파괴된 세상에 놓여진 인간 개개인의 딜레마일 것입니다. 그것은 가족주의의 한 단면으로 비쳐지기도 하겠지만 황량한 지구에서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견뎌내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대답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당신은 착한 사람인가요?"



끝없는 희망의 여정 
영화는 결국 희망의 여정(Road)에서 끝을 맺지만 그 희망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바다는 푸른색이냐고 묻는 아들에게 모르겠다고, 옛날에는 푸른색이었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은 담보되지 않은 희망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 저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당혹스러웠습니다. 크레딧이 다 올라올 동안 일어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계속 나오는 눈물을 닦아 내야만 했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묻습니다. "가슴에 불씨가 있는가요?" 머뭇거리며 가슴에 손을 대봅니다. 팔딱이는 심장을 느낍니다. 그러나 대답이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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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영화2010/01/03 17:20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를 갑니다. 그러면 다들 이런 얘기들을 합니다.
"누구나 다 가는 군대, 잘 다녀와", "군대에서 사람돼서 돌와오너라", "저 친구 군대 갔다오더니 사람이 확 바뀌었네"
실제로 군대 제대 후 소위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근데 그 어른이란게 뭘까요? 힘에 굴복하고 부당함에 짖눌리며 경쟁에 순응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제대군인의 올바른 변화상입니다.

이라크전에서 돌아온 아들이 실종되자 그 행방을 찾아 나선 퇴역군인 아버지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는 아들이 휴대폰으로 찍어둔 흐릿한 이라크전의 영상을 통해 전쟁의 참상 속으로 다가갑니다.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으로 일생을 살아온 아버지는 아들의 탈영, 실종, 그리고 죽음과 맞닥뜨리면서 애써 감춰왔던 진실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었던 아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판이한 그 행적들에 대해 극도의 이질감을 느낍니다.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벌벌 떨며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어야 하는 파병군인들은 그들이 살아온 삶 전체를 송두리채 빼앗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괴물로 다시 살아가야 합니다. 최소한의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괴물이 되어 버린 아들, 아들들 앞에서 행크는 그 자신이 군인이었음에도 그저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가에 대한 신념에 거대한 금이 가는 순간입니다.

행크가 지역관할 형사 에밀리 샌더스(샤를리즈 테론)의 어린 아들에게 엘라의 계곡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엘라의 계곡은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곳입니다. 꼬마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두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행크는 말합니다. 골리앗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다 그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고 힘껏 쏘아올린 새총으로 거인을 단 한번에 죽일 수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행크는 드러난 진실 앞에서 더 이상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하늘 높이 구원의 깃발을 올립니다. 세상을 향해 잘못된 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2008년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토미 리 존스의 연기는 이제 정점에 이르고 있는 듯 합니다. 나이가 들 수록 그 주름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배우는 아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토미 리 존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2009년작 <일렉트릭 미스트>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삭제되지 않은 원본 그대로를 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엘라의 계곡 HD 엘라의 계곡 HD Paran
감독 폴 해기스
출연 토미 리 존스,샤를리즈 테론
영화 다운로드무비위젯 퍼가기무비위젯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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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잡담☞☞진담2010/01/03 16:05



출장이 잦아지면서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부산에서 진주까지만도 2시간 정도이니
거창이나 합천을 갈라치면 3~4시간은
여유를 가지고 가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출장을 출장이라 생각하면
속터져서 못갈게다.

그냥 여행이라 생각하고
좋아하는 노래라도 크게 틀어놓고
가다보면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이
늘 문제다.
퇴근시간과 맞물리면
김해에서 북부산까지는
그야말로 주차장처럼
줄을 늘어뜨리고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한다.

출장으로 지친 몸에 차까지 막히니
슬슬 짜증이 나기도 하고
아무리 좋아하는 노래도
하루종일 반복해서 듣다보니
지겹기도 한게다.

그럴때면 꼭 눈치없이 끼여드는 차들이 있다.
'저걸 비켜줘~ 말어~'
'확 받아버려'
'어쭈 깜박이도 넣지 않고 들어오네'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아!
수양이 덜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게다.

그때쯤 나를 위해 속도를 줄이고
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준 채
내 뒤를 따라오는
아까 내가 끼어든 뒷차를 흘끔 보게 된다.

그 차안에는
그저 무덤덤한 표정의 사내가
앉아 있기도 하고
조금은 어름어름하게 핸들을 꼭 쥔 아줌마가
앉아 있기도 하다.

내가 깨닫지도 못한 사이
못되게 끼어든 나를 위해
속도를 줄이고
자리를 양보해주는
이들이 있다.

내가 운전을 잘해서
끼어들기를 잘해서
그 차를 앞질렀다고
우쭐대는 바로 그 때에도
그들은 그저 덤덤하게
내 뒤를 따라 오는 게다.

그러니 나는 그의, 그녀의 수양됨에
감사해야 하는 게다.

세상살이가 다 그럴거다.
내가 지금 앞서 간다고
그게 나의 능력과 실력 때문이라고
떠들어대는 그 순간에도
나를 위해
자신의 속도를 늦추고
자리를 마련해주고
묵묵히 나를 바라봐주는 이들!

나를 사랑하는 이들!!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
끝없이 수양된 이들!!

잊고 있었던
그들의 존재감이
묵직하게 나의 가슴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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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