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09/12/31 09:59




 금은 리얼 버라이어티 전성시대 

얼마전 SBS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 유출로 한동안 인터넷이 뜨거웠습니다. 리얼을 표방하였으나 리얼이 아니었다는 시청자들의 분노였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리얼 버라이어티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방송3사에서 활동하는 소위 국민MC의 칭호를 받는 연예인은 모두 한프로씩의 리얼 버라이어티를 이끌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지금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전성시대인 것입니다. 연예인들이 떼거지로 나와서 자기네들끼리 떠들고 노는게 뭐 볼게 있냐고 하면서도 낄낄대는 자신들을 발견합니다. 그 속에는 만들어졌건, 연출되었건, 일면 리얼의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독 개인의 인맥을 통하여 캐스팅된 6명의 여배우들의 하룻 저녁의 수다 또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이미숙은 <정사>와 <스캔들-조선남여상열지사>에서, 김민희는 <순애보>에서, 김옥빈은 <다세포소녀>에서 각각 이재용 감독과 작업을 하였고 이미숙을 통해 평소 윤여정, 고현정과도 알고 지냈던 사이라고 하니 인맥 캐스팅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최지우만이 평소 감독과 교류가 없는 순수 캐스팅이었다고 합니다. 영화내내 고현정과 최지우 사이에 벌어지는 신경전은 어쩌면 이러한 인맥과 교류의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6명의 여배우가 패션잡지의 화보촬영을 위해 모입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대선배 윤여정은 자기가 누군가의 땜빵으로 캐스팅 된게 아닌가 노심초사합니다. 그리고 연말에 스케쥴이 없어 이렇게 빨리 온 것으로 비칠까봐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급히 고현정에게 빨리 오라고 전화를 합니다. 고현정은 밤새 <무릎팍 도사>촬영을 했노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금방 가겠다고 하지만 늑장을 부립니다. 그러나 사실 가장 먼저 촬영장에 도착한 여배우는 막내 김옥빈입니다. 감히 들어가지를 못하고 지하주차장에서 누가 오는지를 살피고 있었던 겁니다.
평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배우들의 실명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실제와 이야기의 경계는 서서히 무너집니다. 여배우 각각에게 카메라 한대를 배정하고 찍는 방식은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서 출연진에게 각각 달라붙어 연속적으로 찍은 후 편집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끊임없이 카메라가 흔들리는 핸드헬드 방식은 편집점을 찾기 힘든 이러한 상황에서 앞장면과 뒷장면이 튀는 부분을 많이 상쇄시키고 있습니다.
 
 남자, 여자, 그리고 여배우...

심산의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에는 영화배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영화배우들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있다. 남자배우는 허우대만 멀쩡하고 여자배우는 야시시할 뿐 머리통은 텅 비어 있다는 식의 선입견이다. 하지만 내가 충무로에서 만나본 배우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은 신중하게 작품을 고르고 캐릭터를 내면화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관객을 감동시킬 만한 영화를 만들어 내는 데 누구보다도 헌신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영화배우들은 누구보다도 섬세하고 감정적이며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특히 여배우들은 더욱 더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를 연기해 낸다는게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재용 감독은 이러한 섬세하고 감정적이며 민감한 여배우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자기 얘기를 시작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흥미를 느낀 것같습니다.  정해진 대사도 없이 주어진 상황속에서 그녀들은 자신의 얘기를 조금씩, 슬쩍 슬쩍 하기 시작합니다.

여배우로서 나이들어 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혼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들,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한 꿈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여배우들은 보석보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녀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도 느낍니다. 결국 도착하지 못한 보석때문에 화보촬영은 다른 날로 미루어졌지만 어쩌면 그 보석들은 이미 초저녁에 도착해서 반짝이고 있었던 6명의 여배우들, 바로 그녀들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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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영화2009/12/23 19:57



영화미학은 언제나 과학의 발전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태동이 이미 카메라와 필름의 발명에 따른 것이니까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영화에서 컬러영화로,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어 가는 영화 제작 환경은 그에 대응하는 예술가로서의 영화작가들에게 새로운 미학을 창조할 것을 독려합니다. 아마도 과학에 바탕한 영화미학의 실험에 심취한 당대의 영화작가로는 단연 로버트 저메키스를 꼽을 수 있겠지만 제임스 카메론 또한 아바타를 구상한지는 타이타닉을 제작하기 전부터였다고 하니 과학이 추동하는 예술에의 채찍이 가히 놀랍습니다.

아바타는 감독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선택의 짐을 지우더군요. 저 또한 극장의 티켓박스 앞에서 잠깐의 갈등을 했습니다. 2D냐, 3D냐. 그러나 과학이 추동한 영화미학을 경험하고픈, 아니 경험해야만 하는 의무감에 과감히 3D를 택했습니다.


처음에는 안경이 다소 불편했지만 눈이 적응해 가면서 입체영화가 보여주는 현실감이 경이롭기까지 하더군요. 왜 제임스 카메론이 이 영화를 3D로 찍을려고 고집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외계 생물의 아름다운 비행이 바로 손에 잡힐 듯이 다가 왔습니다.  각종 외계 생물을 현실로 보여주는 그 상상력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아바타에 대해 비난하는 글들 중에는 단순한 스토리라인에 대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스토리의 단순함이야말로 아바타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단순한 스토리라는게 바로 우리 인류가 저질러온 인간정복의 역사이기도 하니까요. 보편성의 획득입니다. 전세계 어느 극장에서 상영되더라도 누군가는 가해자의 죄책감을 느끼며, 또 누군가는 피해자의 분노를 삼키며 볼 수 있는 스토리...어떤 데쟈뷰를 겪는 느낌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누군가가 가지고 있으면 그를 적으로 규정하고 뺏어버린다."

나비족의 자연과의 교류는 이미 우리 인간이 알고 있었으나 잃어버린 능력입니다. 그 잃어버린 능력을 대신하여 정복과 파괴의 능력만을 키워온 인류의 미래가 도리어 가슴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단 말인가요? 전투에서 패하고 판도라 행성을 떠나는 인간들의 모습은 영화의 끝이 아니라 더 커다란 재앙의 시작처럼 조마조마 했습니다. 지구로 돌아간 인간들이 더 가혹한 무기를 가지고 돌아올 게 뻔하니까요.



또 한가지 꼭 얘기해야 할 부분은 나비족의 섹시함입니다. 처음에는 왠지 징그러운 듯 느껴졌지만 나중에는 아름답기까지 하더군요. 유연한 몸놀림과 민첩성. 긴팔과 긴다리. 그리고 순수함과 열정까지 겸비한 나비족의 사랑스러움은 관객이 충분히 그리고 별다른 어려움없이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매력을 발산합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아바타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족과 나비족으로서 서로를 바라봅니다. 허상이 실재를 만나는 순간에 그들은 서로를 봅니다. 본다는 것은 타자에 대한 인식과 그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일겁니다. 있으나 보지 못하는 이 거대한 눈먼 자들의 행성, 지구에서 진실을 보고 켜안을 수 있는 용기를 우리 인간족들은 배워야 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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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09/12/22 23:47



역사가 그냥 흘러가서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잊혀져서는 안되겠기에 피터지게 싸우는 글꾼... 조정래!!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이념과 사상을 도움삼아, 이념과 사상에 배반당하며, 조선독립군과 대한광복군과 조선공산당과 조선빨치산은 강철보다 강한 사람의 이름으로 광야를 달리며, 피를 뿌리며, 나의 조국 조선을 되찾았다.
그의 12권의 대하소설 <아리랑>속에서 보석같은 대목을 옮겨 적는다.
 

          일본군들은 마침내 1922년 10월에 러시아 땅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윤철훈과 이광민은 마차를 타고 해삼위(블라디보스톡)를 달렸다.
          "이 길을 걸어서 다니다니..."
          창밖을 내다본 채 윤철훈은 감회에 젖은 소리로 말하고는
          "이동지는 몇번이나 오갔는지 기억하시오?"
          그는 고개를 돌려 이광민을 바라보았다.
          "글쎄요, 그거 잘 모르겠는데요"
          이광민은 모처럼 <모르겠다>는 말을 홀가분하게 해버렸다.
          "그럴거요. 여기저기 너무 많이 다녔으니"
          윤철훈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난 가끔 사람의 몸이 강철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느끼오.
          제 아무리 강한 강철바퀴라 해도 그동안 우리가 걸어다닌 길을
          굴렀다면 다 닿아서 부서지고 말았을거요.
          그런데 우리는 끄덕없지 않소?"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이광민을 쳐다보았다.

                                                     - 사람의 몸은 강철보다 더 강하다 -

 

조정래(趙廷來)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출생하였다. 광주 서중학교와 서울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후 왜곡된 민족사에서 개인이 처한 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등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조정래 전반기 문학은 『조정래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조정래의 전반기 문학 작품들을 한데 모은 이 전집은 소설 형식으로 씌어진 그의 문학적 일대까지 갖추어 상상력에 의한 글쓰기가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살펴볼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한강』은 1980년대 이후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화상> <동국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시문화예술상> <자랑스런 보성(普成)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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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09/12/22 23:35



      차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내가 가는게 아니라 풍경이 가고 있다.
    
     빙글빙글 지구가 돌고 있음에도
     태양이 돌고 달이 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착각한다.
     세상의 중심이 '나'구나.
     <내이름은 빨강>은 그런 나를 깨운다.
     착각하지 말라고 한다.
    
     이 세상에는 또다른 세상이 있다.
     또다른 신과 또다른 예술이 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
     독자를 끌어들이는 형식미!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전편에 걸쳐 올곧게 관통하는
     수려한 문장력!
     신과 역사와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

     동양과 서양의 충돌속에서 겪어야 했던
     이스탄불 사람들의 정체성의 불안을
     세밀화가들의 성쇠를 통해서
     완벽하게, 마치 세밀화를 보듯이,
     그려내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열번을 줘도 아깝지 않다.




작가 소개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로 독서에 몰두하며 청소년기를 보낸다. 이스탄불의 명문 고등학교인 로버트 칼리지를 졸업하고 이스탄불 공과 대학 건축학과에 진학하지만 자신에게 이야기꾼의 재능'이 더 많이 있음을 깨닫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소설 쓰기에 전념하여 첫 작품인 <제브데트씨와 아들들>로 '밀리예트 신문' 소설 공모에 당선된다. 1982년에 출간된 이 작품으로 그는 터키의 대표적 문학상인 '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수상하며 터키 문단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떠오른다.
두번째 소설 <고요한 집>(1983)으로 '마다라르 소설상'과 프랑스에서 주는 '1991년 유럽 발견상'을 받았고, <하얀 성>(1985)이 13개 나라에 번역 소개되면서 파묵은 세계적인 작가의 대열에 들기 시작한다. 또한 터키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는 기록을 세운 <새로운 인생>(1994)은 19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내 이름은 빨강>은 현재까지 32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고 2006년 파묵은 "자신이 태어난 도시의 우울한 영혼을 찾는 여정에서 문화들 간의 충돌과 융합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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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영화2009/12/20 21:22




결혼기념일에 딱히 이벤트를 할 여력이 되지 않아 저녁식사후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아이랑 같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볼려고 했었는데 시간대가 맞지 않고 또 아내의 유혹에 빠져 「뉴문」을 봤습니다.

솔직히 스토리를 이해하기도 힘들더군요. 도대체 여주인공 벨라의 실연의 아픔이 가슴에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뒷줄에 앉은 여학생의 안타까운 탄성을 들으며 뭔가 내가 느끼지 못하는 바이러스가 숨겨져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전편인 「트와일라잇」(물론 이것도 봤습니다 ^^)이 에드워드와 벨라의 사랑의 시작을 이야기 한다면 「뉴문」은 바야흐로 그들의 사랑에 위기가 찾아오고 삼각관계가 전개되더군요. 근데 참 비운의 여주인공인게 하필이면 새로운 남자가 늑대인간이라니요.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쓰라릴까요? 쓰라린 아버지의 모습도 간간이 나오죠. 사위가 흡혈귀가 아니면 늑대인간이라...


초식남과 짐승남의 격돌이라고 해야 되겠네요. 영화는 에드워드의 청혼으로 끝을 냈으니 3탄도 나오겠죠? 솔직히 전미흥행 1위의 기록을 했다는게 저로서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영화가 좋다 나쁘다의 의미가 아니라 난 왜 몰입이 안되냐의 관점에서요. 70mm와이드 스크린에서 봤던 다크나이트도 소녀팬들의 탄성에는 무릎을 꿇었다더군요. 그렇게 소녀적 감성을 건드릴 줄 아는 작가와 감독에게 깊은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감탄하는 뒷좌석의 소녀관객과 아내를 보면서 이제 나도 지구에서 화성으로 더 가버린건 아닌지, 금성녀들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진건 아닌지 내심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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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잡담☞☞진담2009/12/20 18:05



난 내 삶의 반환점을 돌았을까?
내 죽음의 날짜를 모르니 반환점 또한 알 수가 없다.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다 보면
아!! 이 길에서 다시 유턴을 해보고 싶다.
그러나,
그러나,
인생에는 유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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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잡담☞☞진담2009/12/15 21:42




오늘은 좀 서글픈 마음이 계속 드는 날이네요.
뉴스에서는 베이비붐 세대 '정년 60살'로 연장 추진이라는 노동부의 업무보고가 보도되고 있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네요. 요즘 세상에 정년을 채우는 직장인이 도대체 몇명이나 될까요? 정년이 60세면 뭐하고 100세면 뭐합니까? 이미 40중반부터 명예퇴직이니 희망퇴직이니 하며 퇴출을 압박받는데 말입니다.

매년 겪는 구조조정의 바람때문에 직장 분위기가 말이 아니게 쑥쑥한 이런 때 정년 연장추진이라는 보도가 도리어 허허롭기만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면담, 퇴근전에 면담, 또 그다음날도 면담입니다. 나가겠다고 손드는 그날까지 매일 면담입니다. 왜 못나가는지 그 이유를 대라고 합니다. 그걸 몰라서 묻나요? 먹고 살려니, 자식새끼 학교는 보내야 하니까 못나가는거 아닌가요? 


이 설문조사가 왠지 왜곡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일하기 싫어서라뇨, 더 많은 여가를 보내려고라뇨. 수입이 충분해서라뇨.. 뭔가 표본조사가 잘못된 느낌이 나네요. 은퇴의 진짜이유는 나가라고 해서, 은퇴가 아니라 강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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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
2009/12/08 09:20


 
아름답다, 슬프다
- 그녀에게 보내는 그의 답장 -

오늘 아침, 출근길에 어린 까치 한 마리를 보았어. 까악 까악 울어대는 입속이 빠알간 어린 까치가 제법 영글은 날개를 파닥이며 플라타너스 가로수, 그 푸른 가지들 사이를 총총이 날아 다녔어. 그 때 내 이마에 배인 땀을 닦으며, 아! 여름이 왔구나. 이 여름에 난 아직 이 곳에 있구나. 생각했어.

그 날, 시골집으로 너를 만나러 간 그 날. 이미 삐걱거리는 마음의 틈새가 불안해서, 혹시나 그 틈이 틈이 아닌 쪼개짐이 되면 어쩌나 안달이 나버린 나를 너도 보았니? 너가 나를 놀란 토끼마냥 바라보다 황급히 뒷문으로 밀어내다시피 끌었을 때, 아니구나, 나는 아니었구나. 온전히 너에게 내가 서있을 수는 없구나, 생각했어.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그녀가 세상을 처음으로 배웠을 고향집에서,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황급히 밀쳐내졌을 때,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입에 담기 싫어 했던, 그러나 가슴 한 켠에 늘 또아리를 틀고 있던 불륜의 역겨운 냄새를 맡고 말았는지도... 그러나 뭐 어때. 그게 죄라면, 그래서 너와 함께 받아야 할 벌이라면 난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돌아오는 기차의 흔들림 속에서 너가 이렇게 흔들리다, 흔들리다 나에게 다시 올거라는 희망을 품었어.

어린 시절, 안방에서 들리던 부모님의 다툼이 무엇 때문인지 구체적인 언어로 들리기 시작했을 무렵에 난 아버지가 정말 싫었어. 또 두려웠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가벼운 바람에도 쉬 쓰러질 싸리울인거 같았어. 그 때 어머니는 밥을 짓다가도 넋을 놓아 밥을 태우기도 하고, 바느질을 하다가도 앞산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다 바늘로 손을 찌르곤 했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그냥 입으로 쪽쪽 빨고는 했어. 그런 날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었어. 그러면 나는 괜히 씩씩한 척하고 방을 쿵쿵거리며 다니고 숙제를 열심히 했어.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길어지고, 내가 누룽지를 먹는 날이 많아지던 어느 날 밤에 설잠을 자고 있던 나는 아버지의 웅얼웅얼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어. 아버지가 돌아왔구나. 나는 돌아 누운 채 그 웅얼거림에 귀를 세웠어

다 잊었어. 다 끝냈다고. 내 마음의 바람을 잠재웠다고. 그러니 당신도 다 잊어.

당신만 잊으면 , 당신만 끝나면, 내 마음의 생채기는 어쩌라고. 바늘로 손을 찔러 피가 뚝뚝 떨어져도 아프지 않을 만큼 깊은 내 마음의 생채기는 어쩌라고.

내가 다 보상하리다. 다 갚으리다.

그 날 난 참으로 편안한 잠을 잔 것같아. 이후로 아버지는 정말 다 보상하려는 듯, 다 갚으려는 듯 참으로 열심이었어. 그러나 깊은 밤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다 마주 친, 마루 끝에 앉아 담배를 피는 아버지. 학교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된 축처진 어깨로 걷는 아버지. 일요일 오후 내내 등을 돌리고 벽을 바라보며 누어만 계시는 아버지. 너무 늦게 찾아온 바로 그, 순서도 없는 그 감정의 바람앞에서 힘겹게 싸웠는 지도 모를 아버지의 슬픔을 종종 보곤 했어. 아비지의 그 여자가 떠나갔다고, 아니면 떠나 보내졌다고 해서 어머니는, 그리고 나는 행복했었나?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어. 아버지, 당신은 행복하셨나요? 아니 행복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럭저럭 견딜만 하셨나요? 어떻게 견디신건가요? 미친 듯이 궁금한 이 말을 하려고 했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이번 주말에 내려갈께요. 어머니 산소에도 가구요. 네. 은선이도 많이 컸어요. 그러고는 끊었어.

이젠 완연한 여름이야. 우리의 계획대로라면 이 여름은 이 곳이 아닌 외국의 어느 거리에서 우리가 함께 하고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서로를 잊기 위해 애를 쓰는데 이 여름을 보내야 하다니. 그래도 오늘 아침처럼 입속이 빠알간 까치가 까악 까악 울고, 눈이 부실만큼 하얀 햇살이 비추는 날엔 너를 잊지 않으려 애를 쓰고 싶어.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는 그 아름다움 만으로도 슬프니까 말이야. 내 사랑...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말이 될지라도, 내 사랑...안녕.


작가 소개
신경숙(申京淑)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 우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존재의 내면을 파고드는 섬세한 문체와 삶의 시련과 고통에서 길어낸 정교하고 감동적인 서사로 평단의 주목과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소설집으로 <강물이 될 때까지><풍금이 있던 자리><감자먹는 사람들><딸기밭><종소리>등과 장편소설로는 <깊은 슬픔><외딴방><기차는 7시에 떠나네><바이올렛><리진> 등이 있다. 짧은 소설집 <J이야기>,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자거라, 내 슬픔아>와 한일 양국을 오간 왕복 서간집<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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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인